안녕하세요, 우영입니다.
입추가 지나고 조금 선선해져서, 역시 입추매직이로군.. 했지만, 여전히 폭염주의보 아래에 있네요. 주말에는 안양천에 유아용 물놀이 장에서 아이랑 찰방찰방 더위를 식히다 왔어요.
일주일에 한번은 근처 체육센터의 자유수영을 노려보는데, 방학 이후로 매진일 때가 많아져서 땀만 흘리고 돌아올 때도 있어요. 언젠가는 카프카 처럼 소설쓰다가 훌러덩 옷을 벗고 수영을 할 수 있는, 물이 가까운 동네에 살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3호부터는 음악을 한 곡씩 소개해 보려해요. 여름의 청량한 물과 연관 된 곡으로 최미루의 '물수제비'를 추천해보았고요. 작년과 올해 저의 여름을 크게 채우고 있는 지원사업에 대한 에세이를 썼어요. 지원사업은 예술인과 뗄 수 없는 관계이면서 늘 고민되는 자원이지요. 3호 에세이는 '지원사업의 그림자로부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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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풍선 추천곡 🎧
올해 한국대중음악상 후보곡을 뒤져보다가 가장 놀랐던 곡은 의외로 포크였고, 바로 최미루 님의 '물수제비' 였어요. 인디 음악중에 목소리와 노래말 그리고 담백한 기타와 여백으로 곡을 이끌어가는 것이 포크라면, '이 사람은 포크의 미래구나'라는 생각이 들만큼 좋았습니다.
청아한 목소리와 어쿠스틱 기타, 귀를 붙잡아두는 가사들은 익숙한 포크의 문법이었지만, 맑은 일렉기타 사운드가 물수제비가 튕겨서 파문을 남기는 이미지를 꾸준히 그려냅니다. 그리고 후반부로 가면서 이 요소들이 포개지며 머리에 화아아아~~ 펼쳐지는데. 크윽.
겨울에 처음 들었지만 정말 청량한 감동이었습니다. 종종 뮤지션들의 인터뷰를 보면 생각보다 '시각적인' 언어를 많이 사용하는데요. 색감, 질감, 어떤 이미지, 사운드를 구상하고 설명할 때 시각적인 언어에 기대기도 하는구나, 하면서 반갑게 끄덕거리게 되죠. 이 곡은 친구와 물수제비를 하다가 환하게 부서지는 아름다운 물보라 같은 이미지를 남기는 곡입니다.
최미루는 포크 음악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탁월하게 풀어낸다. 거창하지도, 무겁지도 않다. 흔한 ‘물수제비’ 놀이를 가지고 그는 ‘나’와 ‘너’, ‘우리’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한다. 어쿠스틱과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어우르고 그 위에 쌓아가는 목소리의 중첩은 놀라운 음악적 성취였다.
선정위원 김학선 (한국대중음악시상식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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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지원사업의 그림자로부터
요즘은 광명에 있는 지역아동센터로 파견을 나간다.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예술인파견사업' (이하 '예술로')을 통해서다. 한 해가 저물고 다시 한 해를 시작하는 분기점에 자리한 지원사업은 예술가의 일상과 그 해의 방향성을 크게 좌우하는 자원이다. 재단은 생활고로 사망한 최고은 작가의 비극 이후 설립되어, 근로 조건이 불확실한 예술인의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다. 덕분에 나도 몇 년째 국민연금과 산재보험을 꾸준히 납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24년 처음으로 참여한 '예술로'는 기대와 달리 무척 실망스러웠다. 선발 과정부터 압박 면접과 관료적인 교육을 겪으며, 그동안 재단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감정이 상당히 깎여나갔다. 이 사업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파견 시 인증 사진에 대한 안내'였다. 좌표와 날짜가 나오는 특정 앱으로만 촬영해야 파견이 인증되는 시스템이었다. 사업 진행 과정을 이토록 집요하게 증빙하는 사업은 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 왜일까? 다른 예술가에게 전해 들은 이유는 더욱 경악스러웠다. 이전에 참여했던 예술팀이 옷을 여러 벌 준비해 마치 다른 날 활동한 것처럼 사진을 찍어 서류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내부 고발로 국정감사에서 불거졌고, 그 이후 파견사업에 빡빡한 감사와 인증 체계가 뒤따랐다고 한다.
2024년 예술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예술인의 평균 연 소득은 1055만 원으로, 국민 평균 소득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옷을 갈아입어가며 인증을 속였던 예술인들은 그 자원을 어떻게 생각했던 것일까. 예술인의 경제적 불안정함을 지원하기까지 조용한 비극 위로 목소리가 모였다는 사실을 잊은 것은 아닐까. 그들이 남긴 불신은 또 다른 형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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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사업'은 늘 예술가의 한 해 살림과 창작에 큰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자원을 받기 위해 기획한 내용이, 실행 기간 동안 다시 예술가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다. 자원이 요구하는 형식과 증빙에 허덕이다 보면, 원래 하고 싶었던 창작과의 교집합을 찾기 어려워지기 일쑤다. 보고서와 영수증 처리에 매달려 겨우 한 해를 넘겼다는 안도감 뒤에는 어떤 허무가 드리운다. 무엇을 위해 애썼는지 손에서 휘발되는 결과와, 내 창작으로 온전히 자립하지 못한 속상함. 그럼에도 다음 해 지원사업 일정을 염두에 두는 마음은 매번 복잡하다.
'예술로' 파견사업은 타 지원에 비해 무리한 선언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점이 좋다. 5명의 예술인이 6달가량 특정 기업이나 단체에 파견되어 현장에 필요한 과업을 수행한다. 한 달에 10일, 30시간을 일하며 그중 5일, 15시간 이상은 현장으로 출근했음을 인증해야 한다. 월급은 재단에서 지급되기에, 기업과 단체는 무료로 예술가들과 협업하는 계기를 얻고, 예술인은 안정적인 수입과 일이 생긴다. 서로에게 제법 이상적인 사업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여러 주체가 움직이는 사업은 섬세해야 한다. 재단은 자원을 배분하고 행정 처리하는 것 이상의 비전과 여력이 없어 보였다. 파견사업 전후로 예술가들과 현장이 느끼는 점들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 채 10년이 흘렀기에, 여전히 '형식'만이 공고한 상황이다. 낯선 장르의 예술가들이, 낯선 현장에서 일정 기간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특수한 상황에 대해 재단은 그 '세부'를 인지하지 못한다. 이 사업은 현장과 매칭된 사람에 따라 매우 다양한 양상이 펼쳐지기 때문에 세부적인 부분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예술가들은 세부를 신경 쓰며 산다. 그 세부를 함께 읽어주는지에 따라 신뢰할 수 있는 협업인지, 대충 형식만 맞춰주고 말지 빠르게 판단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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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파견지역인 강화도 '협동조합 청풍'은 거리가 멀어 예술인들에게 기피지역이다. 결국 현장과 관계없는 인력이 매칭되었고, 현장에서는 중간에 예술인 파견을 거절했다. 현장에 섞이지 못하고 덩그러니 남겨진 예술가들과 그래도 기획을 이어갔고, 예상치 못한 '자유'를 얻은 덕분에 야밤에 산에서 명상 프로그램 <밤도깨비 산책>을 기획하게 되었다.
이 경험은 '형식'이 다 담아낼 수 없는 '세부'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대부분의 지원사업이 그렇듯, 성과를 묻는 양식에는 참여 인원, 회차, 미디어 노출 정도만을 묻는다. <밤도깨비 산책>은 5회 동안 약 60명의 사람이 참여했다는 소박한 숫자로 기록되지만, 그 양식에는 담기지 않는 세부적인 장면들이 있었다. 참여자들이 숲길에서 서로 인기척을 느끼지 않도록 떨어졌다가, 다시 모여 걷기 위한 거리와 동선. 싱잉볼 연주와 무용수가 합을 맞추며 악기를 포개보던 연습 과정. 산책 끝에 각자의 두려움과 불안을 나직이 내뱉으며 앉았던 대화의 서클. 이 모든 장치들이 유효했는지 서로 되묻던 예술가들의 회고까지. 사업의 이해관계와 형식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중요하고 치열했던 세부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세부들은 사라진다. 지원사업이 끝남과 동시에 그 중요성도 함께 휘발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는 밤 산책을 준비하려 산을 오가고, 더 나은 체험을 위해 세부를 신경 쓰던 순간과 대화들이 좋았다. 매번 어두운 숲으로 들어갈 때 빛이 없어 사진이나 영상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던 점이 아쉬웠고, 그 아쉬움은 시간을 넘어 창작으로 이어졌다. 사업이 한참이나 지난 여운을 붙들고 나온 그림책은 성과와 무관하게, 어떤 창작은 조금 뒤에 온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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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만,
자원이 드리운 형식에 잠식되고 싶지 않아요."
나는 올해도 이 말을 광명에 함께 파견 온 예술가들 앞에서 한다. '5일만 적당히 인증해도 월급이 나오는데...'라는 마음이 서로에게 피어나기 전에 이 말을 꺼내본다. 나의 애씀이 자원이 드리운 형식을 크게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형식만을 채우기 위해 가짜 증빙을 했던 과거의 예술가는 지금의 예술가에게 불신을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불신의 궤적은 서로를 괴롭히며 상투적인 형식과 하지 않아도 될 '가짜 노동'을 두텁게 한다. 형식에 짓눌릴수록 예술은 피어나기 어렵다.
올해 파견된 지역아동센터에서도 마찬가지다. 그저 회차를 채우면 되는 일인데도, 우리는 매주 아이들에게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제공한 후 방에 모여 회의를 한다. 어떤 세부에 대해 또 회의를 하는 것이다. 이 모습이 어떻게 비칠지는 모르겠지만, '예술가의 일하는 방식은 저렇구나' 하는 태도를 남기고 있다고 느낀다. '예술인을 지원하고 함께 일하는 경험은 이런 면이 좋구나' 하는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주는 것, 이것이 파견 과정의 성과일 수 있을까.
사업 의도와 다르게 낯선 환경에 던져진 상황은 예술인 각자에게 '기획'을 고민하고 실행하게 만든다. 자신이 고수하던 창작의 문법과 방식이 먹히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과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고 있다. 낯선 환경에서의 이러한 경험의 누적도 귀하다. 마치 적정 난이도의 오픈월드 게임처럼, 긴장을 놓을 수 없지만 흥미로운 경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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