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풍선 레터 2호입니다. 💬💬 월간을 목표로 했는데 7월에 두 번째 편지이니 선방하고 있네요. 이게 뭐라고 나름 지면이 생겨니 밤에 유튜브 보는 시간에 뚝딱거리면서 글 쓰게 되어서 좋은 점도 있어요. 근래에 폴란드의 소설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책을 읽고 있는데요. 노벨상 수상자인 그녀의 강연록이 담긴 <다정한 서술자>를 시작으로 다른 소설로 번져가고 있어요. 이 책은 이야기를 창작하는 과정을 논리적인 작법으로 설명하지 않는데요. 어떤 '서술자'가 내면에 태어나는 영적인 과정에 대한 증언이자, 그녀의 솔직한 창작 과정이기도 합니다.
책의 중반에는 후배 작가들 앞에서 한 강연록이 있는데 '작업의 동기'를 묻는 대목입니다. 젊은 작가들이 단지 '유명해지고 싶어서' 소설을 쓰는 것이라면, SNS와 북토크에 기웃거리며 문학을 상품화하는 것에 일조하는 것 뿐이라는 비평이죠. 노벨상 안 탔으면 아마 '꼰대'로 문제시되었으려나요. 저는 서로가 유난스러워야 생존하게 되는 지금의 흐름에서, 문학과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 어디를 봐야 하는지 잘 지적해 주어서 좋았습니다. 이 책을 빌어서 말풍선 레터 2호를 보내드립니다.
유감스럽지만 나는 문학을 단순한
상품으로 인식하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상품을 사고 파는 질서가 현대 사회의
근간이자 균형을 유지하게 해 준다는
믿음은 지나치게 순진하고 단순한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많은 이가 이런 믿음을
필사적으로 공유하고 있음에도 말이죠.
새로운 제품에 대한 수요가
충족되고 나면 소요된 비용을 계산하여
모든 이해 당사자가 나누고
상품들은 서점의 서가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제고품은 다른 제품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 주기 위해
종종 분쇄기 속으로 던져집니다.
...
이러한 과정에는
일종의 폭력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올가 토카르추크 / <다정한 서술자>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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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쓸쓸해지지 않는, 독립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 판매자로 참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캉스 프로젝트>(이하 '바캉스')가 있었다. 낑낑대며 책 세 박스를 들고 도착한 'B홀 S1', 약속의 땅! 나는 올해 처음으로 이 그림책 작가 모임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림책 씬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작가들이 매년 국제도서전에 맞춰 독립출판물을 선보인다. 도서전에서 아마도 유일한 작가들의 공동 연합 부스일 것이다.
그림책을 사랑하는 팬들이 신간을 보고 싶어 찾아오거나, '바캉스' 팀의 시즌별 책을 모두 모으는 컬렉터도 있을 만큼 '바캉스'라는 이름에 쌓인 신뢰는 두터웠다. 한국의 옛 이야기를 재해석하고 기존 출판사에서는 시도하지 않는 방식의 책을 만드는 데 의의가 있다. 두루마기 형태의 <연인, 인연>은 금세 동이 났고, 윷을 던져 점괘를 읽는 <도개걸윳점>, 병풍을 펼치듯 연결되는 <회전문> 등, 책을 새로운 형식으로 변주한 시도들이 독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매일 재고 관리와 정산을 위해 그날의 판매 현황이 바캉스 단체 카톡방에 공유된다. 어떤 책이 잘 팔리고 어떤 책이 덜 팔리는지 시장 반응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다. 나는 분명히, 덜 팔리는 쪽에 있었다. 어뜩하지. 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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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캉스 프로젝트 신간들 (사진/바캉스 프로젝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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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만드는 일 자체는 쉬워졌다. AI가 글, 그림, 디자인까지 대신해주는 시대. 인쇄사이트에서 결제만 하면 책은 집 앞으로 배송된다. 책 하나 출판하는 일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독립출판'이라는 말은 독립영화나 인디음악의 연장선에서 자본시장의 대척점을 상징한는 용어로 등장하였지만, 책을 만든다는 행위만으로 그 단어가 지향하는 의미가 완성되지는 않아 보인다. 기존 출판시장의 어떤 부분의 안티테제로서 '독립'인가? '자가출판' 혹은 '셀프퍼블리싱'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건 아닐까.
출판 시장은 그 파이가 원체 작아서, "저쪽은 자본이야!" 하고 각을 세우기 머쓱한 동네다. 대형 출판사 몇몇이 도서전의 성주처럼 존재하긴 해도, 그 주변에는 소규모 출판사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편집자가 퇴사 후 독립하여 1~2인 체계로 운영하는 출판사도 적지 않다. 최근 배우 박정민이 만든 출판사 <무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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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문학을 담는 그릇이면서 동시에 대량 생산되는 '상품'의 논리에서 자유롭지 않다. 상품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멀쩡한 재고를 파쇄하는 결정은 명백한 자원의 낭비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상품으로 존재하고 유지되기 위한 과정이라며 별문제 없이 행해진다. 안 팔리는 옷을 불태우는 것과 안 팔리는 책을 파쇄하는 일은 다르지 않다. 새로운 상품이 놓일 자리를 위해 기존의 물건이 폐기되는 것이다. 출판계가 애써 만들어낸 '도서정가제'는 유통 과정에서의 불공정한 할인이나 덤핑을 막기 위한 약속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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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격'을 건드리지 않고는 할 수 있는 마케팅이 많지 않다. 00%할인, 1+1 같은 프로모션은 모두 가격과 연결된다. 결국 가격을 건드리지 않고 남은 방법은, 부수적인 '덤'을 끼워주는 방식이다. 커피 한 박스를 사면 컵을 주는 방식, 굿즈! 서울국제도서전은 점점 '굿즈'에서 '굿즈'로 끝나는 기이한 행사가 되어가는 중이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소비의 향연을 출판계가 과연 흥행이라 부르며 즐거워해도 되는 걸까. 마스킹테이프, 스티커, 연필, 키링 그리고 키링. 책보다 문구가 소비자의 이목을 끈다. 책은 읽어야 살지 말지 판단할 수 있지만, 문구는 미감이 예쁘면 되기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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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출판이 가능해지면서 남은 어려움은 결국 '유통'이다. 독서인구는 모아봐야 한줌인데 모두가 저자가 되고 싶어하니 경쟁은 치열하다. 지인들이 사주고 나면 정말 혼자 팔아야한다. 동네책방 몇 곳에 납품하고 북페어에 지원하며 참여하는 방식들이 있다. 국제도서전에도 독립출판을 위한 'U-17 책마을' 구역이 따로 존재한다. 독립출판 부스는 보통 작은 책상 하나에 매대를 만든다. 책상 위에 최대치의 벽을 쌓은 뒤 숨어 있는 판매자들이 인상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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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페어에는 늘 묘한 기류가 있는데. 내향인(판매인)과 내향인(독자)이 작은 책상 하나를 두고 어색하게 대치하는 상황이다. 서점에서는 책을 천천히 둘러보며 신중하게 선택할 수 있지만, 북페어에서는 책 바로 뒤에 '작가'가 있다. 자세히 보고 싶어도 설명을 들으면 미안해져서 사야 할 것 같은 거리. 판매자 역시 슈퍼 내향인으로 매대를 멀뚱히 지키며, '오늘만 외향인' 최면을 걸고 미소와 친절함을 장착해보지만, 독자가 책을 보게 두어야 할지 설명을 드리는게 좋을지 난감하다.
가장 큰 책 행사인 국제도서전조차도 독립출판 '책마을' 부스는 책상 하나에 작가 한 명이라는 포맷이다. 공간을 임대하는 부동산 논리로 쪼개지고 쪼개져 책상하나를 임대하는 방식이, 작은 책상에서 몇일이나 자리를 지키게 하여 큰 피로를 유발한다. 책이 잘 보이기 위해 각자가 무리해서라도 우아한 행색을 갖춰야 하는 애씀들. 풀샷으로 촬영된 사진 속 인파는 행사의 규모와 흥행을 강조하지만, 그 뒤에 감춰진 피로와 초라함은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부스 형태는 책이 발견되기보다는, 이미 SNS 인지도나 팬덤에 따라 결과가 정해진 게임처럼 느껴진다. "텍스트 힙은 개뿔" 삐딱한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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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이 <바캉스 프로젝트> 부스가 아니라 'U17 책 마을' 구역에 놓여있었다면, 나는 도서전 내내 고단한 판매자들의 표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바캉스' 부스는 대형 출판사로 대표되는 A홀과, 소형 출판사 및 독립출판 부스 사이에 배치되었다. 이곳과 저곳의 경계. <바캉스 프로젝트>의 부스 운영은 당번을 정해서 오전오후 교대로 판매자가 된다. 서로의 책을 설명하고 팔려면 먼저 잘 읽어야 하고, 자연스레 다른 작가의 창작에 자극과 응원이 오고간다. 책상 하나보다 두개가, 혹은 다섯개가 되면 책이 전시 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된다. 오고가는 사람이 와서 책만 슬쩍 들추보고 가도 되는 거리. 관심있는 독자에게는 직접 작가가 설명해 줘도 부담되지 않는 거리. 그런 공간과 여백이 혼자 할 때보다 조금은 생긴다.
북페어와 도서전에서 더 이상 작가를 작은 책상 하나에 고립시키는 운영 방식은 그만 해야하지 않을까. 빈 책상과 멀티탭 하나만 덜렁 주는 구조에서 벗어나자. 책상 하나를 꾸미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기성품을 검색하는지 해본 사람은 안다. 전시 매대의 연출을 개별 작가나 출판사만 감당하지 않도록. 이제는 판매자 모집 단계에서부터 장르나 카테고리를 사전에 기획하여, 작가들이 최소 5인 단위로 한 구역을 공동 운영하는 방식은 어떨까. 독박으로 부스를 운영하지 않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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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캉스 작가들이 기획하고 진행 한 북토크 장면. 작가 개인으로 고립되지 않게 하는 시도들이 필요하다.
(사진/서울국제도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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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흥행이라 홍보된 국제도서전의 뒷모습은 아름답지 않았다. 국제도서전에 초청 된 아랍과 태국쪽 부스에는 사람 한명 다니지 않았고, 대형 출판사의 그늘 뒤에서 해외 판매자는 텅 빈 부스에서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얼리버드로 티켓을 모두 소진해 버려서 어린이와 가족 관객은 입장하지 못하였다. 어린이 독자가 주요 타깃이었던 출판사들은 SNS에 울분을 쏟았다. 쉴 공간이 없어 도서전 측이 힘주어 준비한 '믿는구석(올해 캐치프레이즈)' 전시 공간에 사람들이 탈진하듯 바닥에 앉아 쉬던 사람들. 아이 둘을 데리고 통로에 앉아 삼각김밥을 먹는 부모, 3살 된 나의 딸과 조카는 인파에 떠밀려 쫓기듯 떠나야 했다.
우리가 문학과 책에 기대했던 풍경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성수동의 팝업스토어 같은 소모적인 열기를 도서전에서 굳이 재현할 필요가 있을까. 역대급 불황이라는 출판업계가 살아남기 위한 길을 찾아야겠지만, 역대급 흥행이라는 도서전과 여러 북페어의 모습이 조금은 더 문학적이고 인간적 일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해 보인다. 그래야 책을 짊어지고 입성하는 출판인들의 '독립'도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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