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우영 작가입니다.
'독립!!' 올해 제가 품고 있는 화두인데요. 밴드 <단편선과 순간들>의 곡 '독립'을 듣다가 메아리 치듯 반복되는 단어와 독립을 수식하는 문장들이 잊고 있던 '인디(indie)'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독립,
스스로 이유를 찾는
홀로 멀리에 있는
홀로 멀리로 가는
독립,
스스로 춤을 추는
홀로 쓸쓸해지는
홀로 우스워지는
독립,
폭풍이 치는 새벽
온몸을 던져
누수를 막는
독립
이런 가사입니다.
저에게 독립 independent, '인디(indie)'의 이미지는 90년대 전후로 활동했던 락밴드와 뮤지션들에 닿아있어요. 자본이나 대중매체의 대척점에 서서 자신의 창작을 고집있게 지켜나가는 모습이 제 마음 한편에 특유한 '멋'으로 자리하고 있어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해서, 모두가 방송에 나가고 미디어를 운영하며 끝없는 콘텐츠를 발신해야 '생존'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죠. 덕분에 홍보와 마케팅이 모두가 탑재해야 하는 시대정신이 되어버렸고요.
이런 시대에서 창작자로서 '독립'은 무엇을 지향하는 걸까.
'독립출판'은 정말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시선 위에 있을까,
아니면 소자본의 아마추어 결과물을 그렇게 부르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맴돌면서 어쨌든, '독립'하려면 미디어 정도는 하나 더 운영해야지 싶어서.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뉴스레터를 떠올렸어요. 창작자이자 돌봄과 살림을 책임지는 생활인으로서 '독립'하는 여정을 말풍선에 담아 보내려 합니다.
첫 번째 말풍선은, 소문난 책잔치 '2025 서울국제도서전' 참가후기 1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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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밍한 시상식.
아이를 어린이 집에 보내고 돌아와 아침 청소를 한다. 부지런히 해야 11시 전에는 책상에 앉을 수 있는데, 종종 더러운 것이 눈에 띄면 시간이 더 소요된다. 그날은 하필 화장실에 걸린 수건의 찌든 때가 눈에 들어오는 바람에... 가스불을 켜고 삶았다. 공기에 수증기를 담뿍 머금은 장마. 화장실 물때와 곰팡이가 눈에 걸리는 계절이다. 삶은 수건을 탁탁 털어 널며 문득, '상을 받으면 뭐라고 말해야 하지, 책을 소개하다 아버지를 말하게 되면 어쩌나... 울면 안 되는데' 그런 생각들이 빨랫대 위에 스쳤다. 단정한 검은색 무지 티셔츠를 입고 거울 앞에 섰다가, 아버지가 입던 남방으로 갈아입었다. 풍채 좋은 아버지의 옷은 촌스럽고 헐렁해서 내가 입어도 어울릴 때가 있다. 아버지 덕분에 그려진 만화이니 그와 함께여야 할거 같았다. 아버지의 보호자로 살았던 계절을 만화로 그린 <많이 좋아졌네요>가 서울국제도서전 '한국에서 가장 좋은 책'(만화부문)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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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우리나비> 출판사 부스 M34에 도착했다. 큼지막하게 인쇄된 현수막과 책들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 그 안에서 조용히 사인회를 열었다. 대형 출판사들이 쌓은 크고 화려한 성들을 지나 도착한 변방의 작은 천막들. 국제도서전의 성주들이 앞다투어 뽐내는 위세를 넘어, 외곽에는 소규모 출판사의 천막들로 이루어진 마을이 있다. 책 한 권의 크기는 평등한 거 같지만, 그것을 매대에 올리기 위한 기획과 디자인은 철저히 자본과 비례한다. 화려한 팝업 스토어와 굳즈를 자랑하는 분위기 너머, 책만으로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골목을 누비며 새로운 책을 탐색하는 독자들이 있고, 내향적인 출판인들은 최대한의 용기로 설명을 이어가고, 책은 주인을 찾아간다. 조촐한 사인회에 일부러 찾아와 준 독자에게 주섬주섬 싸인과 가져온 일러스트를 건네드렸다. 고마운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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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대망의 시상식 장소는 인파로 에워싸여 있었다. '이런 상이 아닌데 이상하다' 싶던 찰나, 환호성과 함께 문재인 전 대통령 내외가 등장했다. 취재 열기와 그의 팬들로 붐비는 시상식에서, 축사에 이은 대상 발표와 시상, 그리고 기념촬영까지. 기념촬영이 끝나자 의전과 함께 열기가 우르르 빠져나갔다. 그제야 행사장에는 수상자들과 카메라 한대만 조용히 남았다. 의전의 배경이 되어버린 수상자들은 덤덤할 수밖에 없었고, 남은 식의 진행은 조촐했다. 비문학을 조망하려는 상의 취지는 의미있었고, 특히 학문서를 조망하는 '지혜로운 상'이 인상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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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화 부분 시상자들과 무대에 올랐다. 상패를 받고 한 명씩 나누는 소감 속에 '계속 작업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는 고백이 자주 들렸다. <많이 좋아졌네요>가 출간된 2024년 1월 이후, 나 역시 이렇다 할 소감을 들을 길이 없었고, 책을 물가에 잘 띄워 보내며 조용히 체념하는 법을 익혀야 했다. 책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올 때면, 마냥 다음 작업, 다음 그림에 매달릴 힘이 손에 맴돌지 않았다. 이 책의 심사평은 수신지 작가가 썼는데, 병원의 시간과 작가의 시간을 잘 헤아려 준 글이었다. 심사평이 마치 '잘 읽었어요'하고 보내 준 편지 같아서, 여러 번 읽으며 가슴에 담았다.
시상식에 함께 와준 파트너 재은과 함께 수상작들이 전시된 장소로 향했다. 예전 도서전에서 보던 전시에 비하면 책만 덩그러니 있는 작고 소박한 연출이었다. 거대하고 유난스러운 성대한 성들의 변두리에 말없이 놓인 책들. 수많은 인파가 지나다니는 한켠에 책이 소개될 수 있는 것은 중요한 기회이면서, 책을 더 잘 소개해 줄 수 있는 고민이 뒤따르지 않아 아쉬웠다.
재은과 코엑스 지하의 식당 중 제법 화려한 곳을 찾아 음식과 맥주를 시켰다. 수상의 기쁨을 자축하고 싶었지만 음식도 맥주도 밍밍하고 싱거웠다. 다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씻고 재우고 밤을 맞이했다. 서재에 새로 산 조명과 상패를 놓았다. 이것이 대단한 성취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백지 앞에 앉기 버거운 날에 바라 볼 작은 등불 하나를 받은 고마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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